에네츠어(Enets, Энецкий язык)는 시베리아의 민족 중 인구가 가장 적은 민족 중 하나인 에네츠 민족이 사용하는 언어로 러연방의 소수민족 토착어이다. 에네츠어 화자들은 시베리아의 예니세이강 동편 어귀 근방에 거주하고 있다. 19세기까지는 예니세이-사모예드어, 에네츠계 사모예드어, 또는 бай(baj) '삼림인들' 이나 маду(madu) '툰드라인'으로 불리는 부족명을 따라 바이어, 마두어 등으로 불려왔다. “에네츠인(Энцы, ency)”라는 명칭은 1930년대 중반에 저명한 민족학자이자 언어학자인 프로코피예프(Г. Н. Прокофьев)가 에네츠어에서 ‘사람’을 뜻하는 단어 эннэче(ennece)를 따라서 부르기 시작했다(1966:438). 에네츠인은 여기에 '진정한'이라는 뜻의 онэй(onej)를 더해서 스스로를 онэей эннэчи(onej enneci) '진정한 사람들'이라고 부른다. 에네츠인은 모국어를 оней база(onej baza) '진정한 언어'라고 부른다.
러시아인이 북시베리아를 개발하게 된 시발점은 이 지역에 유명한 감옥 만가제야(Мангазея, Mangazeja)가 건립되면서 여기에서 에네츠인을 포함한 원주민에게 현물세금을 걷기 시작한 것이다. «만가제야»는 사모예드 어원을 지니는데, 네네츠어로 Моӈканси(Moŋkansi) 즉, '무가디의 땅'이라는 뜻이다. 무가디(Муггади, Muggadi)는 에네츠 바이족의 고대 종족의 하나로서 즉, «만가제야»라는 명칭 자체가 이 지역이 에네츠인의 땅이었음 보여준다.
현대 에네츠인의 조상은 17세기에 만가제이 주(Мангазейский уезд)로 유입했다. 고문서에서 이들은 겨울을 나는 지역, 즉 이들이 현물세를 내던 지역이나, 또는 그들이 유목하며 서식하던 지역명을 따라 불렸다. 이에 삼림 에네츠인은 1620년 이전에는 만가제이 사모예드인으로, 툰드라 에네츠인은 투루한스크 사모예드인으로 불렸다. 에네츠인의 유목 지역은 타즈에서 북동쪽으로는 예니세이 만(灣)까지, 니즈 강의 여러 하구(河口)를 포함하고, 남으로는 툰구스카(Тунгуска), 쿠레이카(Курейка)에 이르는 거대한 지역이다.
시베리아 타이미르 반도에 거주하는 에네츠인의 인구는 빠르게 감소중이어서 17세기 초 약 3,100명이었던 인구가 18세기 초에는 약 2,400명(툰드라 에네츠인 1,200명, 삼림 에네츠인 1,168명), 1964년에는 약 400명, 1979년에는 약 350명으로 감소했다. 1989년 인구조사에 따르면 에네츠인은 총 209명 (러시아 연방에 198명, 약 150명의 바이족은 주로 포타포보(Потапово, Potapovo)에 거주, 마두족은 약 50명으로 주로 보론초보(Воронцово, Voroncovo)에 거주)이며, 이 중에서 45.5%가 에네츠어를 모국어로 여겼다(1993:343). 2010년 러연방 인구조사에서 에네츠인은 227명, 에네츠어 화자는 43명으로 집게되었다.
17세기에는 약 3천명의 에네츠인에 비해 유럽 네네츠인은 약 1,400명, 시베리아 네네츠인은 5,700명, 응가나산인 약 1천명이었지만, 오늘날에는 응가나산인이 에네츠인보다 6배 더 많으며(1,300명), 네네츠인은 35,000명으로 에네츠인보다 175배나 많다. 에네츠인의 급격한 인구감소 원인에는 여러 차례에 걸친 이주, 전쟁 및 1630-31년의 전염병 등이 있다. 18세기 말 네네츠, 셀쿱, 에벤크인으로 인해 에네츠인의 영토는 북쪽으로 좁아지기 시작했다. 일부는 타이미르로 이주하여 한타이 사모예드로 불리게 되었고, 나머지는 세 지역(삼림-툰드라 예니시야(Енисия), 투루한(Турухан) 월동지역, 타스 강변)으로 흩어졌다. 이후 셀쿱인의 압력으로 투루한, 타스 지역의 에네츠인들도 예니시야 지역으로 이동하여 이들은 카라신스크(карасинские) 사모예드인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이 이후로도 오랫동안 에네츠인 인구분포의 경계는 불명확했다. 응가나산인 및 네네츠인들과의 영토전쟁이 있었음은 물론이고 그 결과 에네츠인의 인구는 더욱 감소했다. 19세기에 와서야 비교적 명확한 경계가 확정되어 오늘날 거주하고 있는 타이미르에 에네츠인이 정착하게 되었다. 툰드라 에네츠인 (한타이 사모예드인)은 예니세이 강 하구의 오른편에, 삼림 에네츠인(카라싵스크 사모예드인)은 예니세이의 삼림-툰드라 지역의 오른 강변에 정착했다. 이 두 그룹은 오늘날까지 남아서 각각 마두와 바이로 불린다
15세기 말~16세기 초 작자미상의 «동방 나라의 미지의 사람들에 대해»에는 에네츠인에 대한 첫 언급이 등장한다. 14~15세기 초에 러시아인들은 이미 오비강과 예니세이 강을 따라 당시 모피를 지닌 야생동물이 풍부했던 예니세이 지역을 러시아 정부에 편입시키려는 노력이 있었다. 16세기 말경에는 예니세이 지역이 러시아에 현물을 바치도록 편입시키려는 노력이 증가했다. 이와 관련하여 러시아 역사문헌에는 옵스크-예니세이 유역에 사는 종족에 대한 언급이 꾸준히 등장한다. 임레르, 팔라스, 게오르기, 스트랄렌베르그, 피쉐르(Г.Ф Имллер, П.С. Паллас, И.Г. Георги, Ф. Страленберг, И.Э. Фишер) 등의 시베리아 학자들의 연구물에는 에네츠인을 포함한 사모예드족에 대한 이야기를 찾아볼 수 있다.
툰드라 에네츠인은 1970년대까지는 순록 무리를 이끌고 툰드라에 거주하였으나 오늘날은 주로 어업이나 사냥에 종사하는 반면, 삼림 에네츠인은 주로 순록 사육에 종사한다.
에네츠어를 처음 체계적으로 연구한 것은 1840년대 핀란드 학자 카스트렌(М.А. Кастрен)으로, 제정 페테르부르그 과학원의 의뢰를 받아 시베리아로 두 번의 탐방을 떠나 사모예드 제어에 대한 민족지적, 언어학적 자료를 수집했다. 19세기 중엽에 그는 «사모예드 어들의 문법»과 2권으로 된 «사모예드어 사전»을 편찬했다. 카스트렌은 에네츠어를 독립어로 보지 않고 네네츠어의 방언으로 여겼고, 사전에는 약 1천개의 에네츠어 어휘가 포함되어있다.
카스트렌 사후 사모예드어는 오랫동안 언어학자들의 관심 밖에 있었다. 1925년 민속학자이자 언어학자인 프로코피에프(Г.Н. Прокофьев)가 사모예드의 언어, 역사, 민속에 대한 연구에 착수했다. 그는 사모예드어를 그들의 역사 및 사회-경제적 상황의 측면에서 연구했다. 그는 몇 년간 사모예드인들과 함께 지낸 결과 1937년에 4개의 사모예드어에 대한 문법 개관서를 발간했다. 프로코피예프 역시 에네츠어를 네네츠어의 방언으로 분류했다. 현대 사모예드어 연구의 상당 부분은 테레쉔코(Н.М. Терещенко)가 이루었다.
에네츠어 화자의 수는 매우 빠르게 감소하고 있다: 1989년에는 인구의 45.5%(95명)가 에네츠어를 모국어로, 38%(80명)이 러시아어를 모국어로 간주하였는데, 2005년 에네츠어의 실질적 구사자는 20명 이하로 추산된다(2005:470). 한편 2010년 러연방 인구 총조사에서 에네츠어 화자는 43명으로 집게되었다. 에네츠어는 페테르부르크(러시아 국립 사범대, 시베리아 민족대), 모스크바, 톰스크(톰스크 국립대)에서 가르치고 있다.